恵知州 (은혜 혜, 알 지, 고을 주) / HUI ZHI ZHOU
중국의 브랜드로 깔끔하고 정갈한 동양적인 미가 돋보이는 작업물이라면 주저없이 꼽고 싶을 브랜드 디자인이었습니다. 고대 건물이 남아있는 지역 브랜드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인지 브랜딩을 위한 사진이 정말 많았고, 그 사진의 퀄리티는 가히 상상 이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브랜드는 일반적으로 가로가 긴 로고가 아닌 세로로 쓴 로고의 형태가 돋보입니다. 적어도 한국 기준에서 읽기 어렵게 글자가 배치되고 돌아가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이 디자인은 그런 부분 조차도 납득이 가게 디자인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자와 영어의 무게감을 고려하여 로고의 중앙이 아닌 살짝 우측으로 한자가 이동해 있는데다 영어의 비어있는 공간때문인지 좀 더 영어의 공간이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미묘한 시각 조정은 이 브랜딩이 얼마나 공을 들이며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한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모양 자체도 집과 산 뿐만 아니라 어떻게 붙여 넣어도 납득이 될 추상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그래픽들도 실로 놀라웠습니다. 여기 있는 픽토그램들 역시 로고로써 쓰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더해 더 확장시킬 수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메인 로고의 형태를 조금씩 따오면서 만들어낸 모양들은 서양의 의미를 함축할지라도 다른 요소들이 뒷바쳐 준다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다만 면이 대부분인 그래픽들과 다르게 선으로 된 이질적인 그래픽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로고에 있는 영어와 어느정도 어울리는 그래픽이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지만, 면이 가득한 곳에 선으로 이루어진 그래픽은 조금 독특하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다만 이 선으로 만들어진 픽토그램은 하단의 사진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모던하면서도 동양적인 멋을 뽐내고 있습니다.
한자 서체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로고에 쓰인 한자는 고전적인 고딕의 모습이 있어서 더 옛스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각 레이아웃에 쓰인 서체들은 얇은 선으로 이루어져 돌기가 나와 있거나 선의 굵기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동양의 미를 물씬 담아내며 정갈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쐐기를 박았습니다. 트렌디한 얇은 곡선과 직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서체는 고전적인 이미지를 확실히 받쳐주며 사진 혹은 면으로 가득한 그래픽에 조합되어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양의 멋이 가득담긴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운영 디자인에서도 너무나 아름답게 응용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체의 강약은 굵기가 아닌 서체의 크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레이아웃은 안정적이지만 이따금씩 개성을 위해 조금씩 그리드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충분히 안정적인 그리드 안에서의 변화이기 때문에 거슬리기 보단 오히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 즐겁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역시 이 브랜드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채도가 진하면서도 아침의 이슬을 머금거나 안개가 끼고, 한창 비가 옅게 내리는 듯한 느낌의 사진은 동양의 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흑백을 대부분 사용했지만, 사진은 이런 흑백의 컬러감을 환기시키며 초목과 지붕의 질감을 통해 풍성한 색감이 있는 것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신비로운 도가의 느낌도 나는 사진들은 바래진 색감의 사진도 활용하여 마치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아름 담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사진은 목업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엽수를 보여줌으로서 날카로움이 있는 그래픽에 통일성을 부여했고, 나뭇잎에만 색을 남기기도 하면서 제품의 흑백을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연꽃에만 남아있는 컬러, 그림자가 강조되어 따사롭고 깨끗한 햇살이 비추는 것 같은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면 일관된 빛의 양을 맞추기 위한 디자이너의 노고에 경이로움 마저 들게 합니다.
서체, 비주얼, 로고, 사진, 컬러, 빛, 그림자, 굿즈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완벽히 조합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빼어난 동아시아의 비주얼을 기반으로 한 이 브랜딩은 보는 내내 아름답고 소름이 돋았습니다. 섬세한 공간과 소품 배치도 중요했을 뿐 아니라 원하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특정 날씨를 기다려야 하는 그 수고로움은 정말 많은 걸 고려해야 하는 브랜딩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정말 보는 내내 눈과 심장이 즐거웠던 훌륭한 브랜딩이었습니다.
